프롤로그 여름의 시작 좀비 같은 걸음걸이다. 버스 정류장까지 걸어오는 사람들. 저마다 귀를 막고 한쪽 방향으로 일제히 고개를 돌린다. 회색 시멘트가 얼굴마다 그득 발려 있어, 웃기라도 하면 자글자글한 주름이 생기며 와르르 무너질 것이다. 단, 한명의 예외도 없이, 모두 같은 표정. 그 표정을 감추기라도 하듯, 밝은 색의 화려한 차림새를 하고 있다. 버스...
눈부신 햇살에 눈을 뜨니 어지럽혀진 방안이 눈에 보였다. 떨어진 옷가지, 제멋대로 쓰러진 가구들이 어제의 부끄러운 행적들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내 옆에는 엎드려 단잠을 자고 있는 그가 있었고, 그가 깨지 않길 바라며 옷을 주섬주섬 챙겨 입었다. 넘어진 의자를 바로 일으켜 세워 앉았다. 침대 위 잔뜩 구겨진 시트 사이로 언뜻 보이는 그의 나체에 머리가 ...
깊은 잠에서 깨어났을 땐 이미 상황은 종료되었고, 관계에는 변화가 찾아왔다. 변화. 그 '달라짐'에 대해 명확하게 말하지 않아도 그것이 주는 기묘한 이질감은 그의 얼굴에 거짓 없이 드러나는 당황스러움과 초조하고 불안한 행동거지를 보면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이었다. 그간 그가 단숨에 해냈던 모든 일에 차질이 생겼다. 오래된 습관을 한 번에 고치기란 쉽지 않을...
짧게, 그리고 비정기적으로 연재합니다. 눈을 떴을 땐, 누이가 눈물을 쏟고 있었다. 평소 악을 써대는 울음과는 퍽 달랐다. 소리 없이 쏟아지는 눈물을 내 누이는 그저 흘려보내고 있었다. 내 누이가 흘린 눈물의 근원은 우리를 안았던 팔에서 느껴지는 단호함 때문이었으리라. 기다림으로 얻을 수 있는 실낱같은 희망조차 거둬버린 그 포옹 때문이었으리라. 누이의 손을...
001. 공포 “어떤 때보다 이번 선거가 중요하다는 사실은 네가 더 잘 알겠지. 물건은 제날짜에 받을 수 있도록 준비해.” 암청색의 넥타이를 매던 사내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거사를 치르고 몸을 채 추스르기도 전에 떨어진 입에서 날이 선 말들이 쏟아졌다. “준비해두겠습니다.” 사내의 말을 끊으며 침대에서 마른 발 두 짝이 무겁게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런데 ...
chapter 1 부정 『예정보다 많이 늦어지네요. 피곤하면 먼저 자도록 해요. 물론, 기다려준다면 더 좋겠지만.』 『기다려 준다면? 브루클린 하이월록의 시간이 얼마나 비싼지는 알고 있겠지?』 『그럼요. 기다린 만큼 후회하지 않게 해줄게요.』 그 문자를 끝으로 동이 틀 무렵까지 그의 그림자는커녕 그의 연락조차 오지 않았다. 기다리는데 이골이 났지만, 지금처...
그런 날이 있다. 모든 것이 완벽에 가까운 날. 무방비한 상태로 낮게 코를 고는 소리, 머리맡으로 쏟아지는 노을로 물든 그의 얼굴, 침대 속 두 사람의 온기가 섞여 더나위 할 것 없이 따뜻해진 온도. 그리고, 무방비한 상태로 전날의 격렬했던 그 어떤 것으로 인해 피곤에 잠들어 있는 품 속의 연인. 문을 두드리는 노크소리도, 시끄럽게 울리는 전화소리도 없는 ...
“나 지금 진지해. 이지. 웃지말고.” 알렉의 진지한 모습에 이사벨은 터져나오는 웃음을 마음속에 꾹 눌러담았다. 얼마 전까지 철옹성같은 제 오빠가 연애를 하리라고는 생각치도 못했던 이사벨이었다. 더구나 그 상대가 브루클린 하이 월록이라니. 누가 알았겠는가? 연애를 한다고 해도 먼데인정도나 고위 섀도우 헌터 정도일 줄 알았으니 이사벨은 이 상황이 그저 재미있...
취향타는 글 쓰는 사람.
자유로운 창작이 가능한 기본 포스트
소장본, 굿즈 등 실물 상품을 판매하는 스토어
정기 후원을 시작하시겠습니까?
설정한 기간의 데이터를 파일로 다운로드합니다. 보고서 파일 생성에는 최대 3분이 소요됩니다.
포인트 자동 충전을 해지합니다. 해지하지 않고도 ‘자동 충전 설정 변경하기' 버튼을 눌러 포인트 자동 충전 설정을 변경할 수 있어요. 설정을 변경하고 편리한 자동 충전을 계속 이용해보세요.
중복으로 선택할 수 있어요.